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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글을 읽다가 「군사부일체(軍師父一體)……」라는 문구를 접(接)하고 상당히 놀랐다. 그것도 교육부 발행문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다. 글을 정리한 사람의 부주의(不注意)에서 발생한 실수이겠으나, 어떻게 이런 과오를 범할 수 있을까?
요즘 대학생들이 신문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비판이 기성세대들 사이에서 많이 들려온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별로 문제로 삼고 있지 않을 뿐더러, 한자(漢字)가 많이 섞인 문헌은 기피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기까지 하니 한문을 많이 섞은 원고는 따돌림을 당하기 마련이다. 별수없이 한글을 많이 쓰게 되지만, 한문으로 표현하는 것과 똑같은 글이 써지지 않으니 그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한글전용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집권시에 결정된 후에 줄곧 정부간행물을 비롯하여 여러 공문서가 한글로 발표되어 왔기 때문인지 근자에 와서는 거의 모든 서적이 한글로 출판되고 있다.
1. 한자혼용(漢字混用)의 요구(要求) 증대(增大) 이런 시점(時點)에서 한자혼용(漢字混用)을 강력히 요구하는 일부 학자가 있으나, 한글학회를 위시(爲始)한 단체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때마침 주민등록카드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성명도 순한글로만 하려 했던 것을 여론의 힘으로 가까스로 성명(姓名)만은 한자(漢字)를 병기(倂記)하기로 했다. 柳, 兪, 劉氏들이 한 "유"씨가 되는 위기를 면한 셈이다.
한문(漢文) 폐지를 강력히 반대하는 분 중에 군장성(軍將星) 출신이 한 분 있다. 그는 군(軍)을 지휘 감독하면서 한글 전용 때문에 가지가지 위험한 고비를 많이 경험했기에 이제는 발벗고 한자교육(漢字敎育)의 선봉장이 되어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다. 법률용어가 한문으로 많이 쓰이고, 의학용어도 역시 그렇다. 따라서 도저히 이대로 한글전용을 해나가다가는 큰일이 생긴다고 걱정들이다. 또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순한글로 된 챠트는 읽기에 매우 불편할 뿐 아니라 뜻의 전달에도 다소 부정확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자혼용(漢字混用)을 선호(選好)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의 석연치 않은 어문정책(語文政策)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70%는 실은 한문(漢文)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글로 옮겨서 쓰고 있으나,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겉으로 대충 짐작하면서 언어가 교환된다. 실은 제각각 적당히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문혼용(漢文混用)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한문(漢文)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한문으로 기록된 것이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사실이다.
한글전용을 계속하면 "제2류 군민"도 못될 것이라는 강력한 비판도 공식석상에서 나왔다. 한자문화권(漢字文化圈)에서 낙오(落伍)되어서는 경제적으로 쇠퇴한다고 경고했다. 12億의 중국인구를 감안하고, 일본이나 월남 등을 고려하면 그럴듯한 예견이기도 하다. 지난 88올림픽에 참가한 한자사용국인들의 불편에 대한 불평은 매우 거센 것이었다. 2002년의 축구 월드컵 대회에서 과감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국제적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방문객 유치에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설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상업적 관점에서도 어문정책은 크게 문제가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한자(漢字) 무용론(無用論)들의 주장(主張) 우리의 과거 문헌은 거의 전부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우리가 상용하는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에 근원을 두고 있건만, 음(音)만 따서 한글로 표기하기에 가지가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 무용론의 세력은 막강하다. 지금까지 많은 격론이 있었고, 결국은 국회에서도 크게 논란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별로 개선이나 변경된 것이 없이 시간만 끌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한글전용"의 위세는 더욱 강해지고, 출판계에서는 한글전용이 경제적이고, 한문을 잘 모르는 젊은 독자들의 인구가 늘어감에 따라서 점점 한글전용의 물결은 억세게 흐를 것이다.
3. 조어능력(造語能力)과 창의력(創意力) 향상(向上) 한자와 한문을 배우면 조어능력이 생기고, 창의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다분히 그런 장점이 있다. 기본적인 한자를 체득(體得)하면 무궁무진(無窮無盡)한 조어(造語)가 가능하고, 21세기(世紀)가 요구하는 창의력(創意力)도 향상된다는 장점을 버릴 수가 없다. 마치 라틴어나 희랍어를 알면 영어(英語)나 독일어(獨逸語)를 사용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는 것과 흡사(恰似)하다. 현대 구라파어(歐羅巴語) 속에는 고대(古代)의 언어 유산들이 그대로 숨어 있어, 이들을 아는 사람들은 현대어의 이해에 있어서 한층 높은 어문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4. 왜 사어(死語)를 고집(固執)하느냐? 지금도 하바드 대학 졸업증서는 라틴어로 쓴다. 권위를 나타내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옛날에 미국에서도 교회에서 설교는 라틴어로 했었다. 교인들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신부나 목사들은 그 전통을 지켜나감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유지했으며, 한편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권위를 인정했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학에서도 라틴어로 교육했었다.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는 사어(死語)인데도 권위를 내세워 강요했던 것이다. 진보적인 Benjamin Franklin은 큰 용기를 내어 英語(日常用語)로 교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자기가 설립한 Pennsylvania 대학에 일대혁신(一大革新)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후 교회에서도 영어로 설교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전통과 권위의 미명 아래 감행(敢行)된 것이었다.
생각을 달리하면, 지금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한글전용"의 폐단도 기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치원생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추상적 표현을 많이 한다. 그런 용어를 이해하고 있는지 믿어지지가 않아 설명을 요구하면, 어른들의 이해 정도는 아니지만, 근사(近似)한 뜻을 전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이해하는 「대통령」이나, 그들이 말하는 「대통령 할아버지」나 별로 다른 내용이 아니다.
5. 「독닙신문」의 교훈 「건양 원년 시월 초칠일」에 발간된 이 신문은 왜 순한글로 썼을까? 그 당시만 해도 「언문」의 위치는 말할 나위 없이 비천했을 터인데도 아마도 민중의 계몽을 위한 수단은 한자를 피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한히 풍부(豊富)한 우리 문헌(文獻)을 번역하는 데에 심혈(心血)을 기울이고 있는 분들의 노고(勞苦)를 충심(衷心)으로 감사하며…
2000년 6월 민족문화추진회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