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 2007/12/02 | 2009/06/24 09:20
/ 名文鑑賞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 2007/12/02
오래전에 내가 한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에, 신문에서 論戰(논전)이 벌어졌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별 것을 다 가지고 너무 자주 일어나지만, 그때는 이런 공개전인 논쟁은 드문 일이었다. 논전의 주제는 한글을 전용해야하느냐 아니면 한자를 혼용해야하느냐였다. 한글 전용을 주장한 사람은 기억이 나지 않고, 한자 혼용을 주장한 사람은 고려대 물리과 교수인 김정흠씨였다.
한글 전용의 주장의 근거는 따지고 보면 말할 것도 없이 애국심이다. 한자 혼용을 주장한 김정흠 교수의 論旨(논지)는, 내기억에, 한자는 동아시아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또 많은 한국의 고전들이 한문으로 저술되었다는 문화유산론과 또 한자를 알지 못하고는 우리나라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들었던 것 같다. 그는 또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지적인 장점이 있다는 것도 주장했던 것 같다. 이에 한글 전용론자의 주장은, 한자는 배우기 어려우며, 또 한자를 몰라도 문맥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한자는 문서자동화에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실시한 한겨례의 창간독자였지만, 이 주제에 관한 한은 김정흠 교수의 편인데 그것은 한자 혼용을 지지한다기 보다는, 한자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을 때 배우기도 어렵고 또 배워도 금방 잊어버릴 것이 분명하니, 혼용을 하지 않으면서 배우기만 한다는 것도 그렇기는 하다. 한국의 교육도 이 두 주장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어떤 때는 가르쳤다가, 어떤 떄는 가르치지 않았다가 Flip-flop을 되풀이해서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떤 사람들은 알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보게된다. 내가 한자교육을 시켜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김정흠 교수의 주장처럼, 한자가 동양문화의 바탕이며, 그 위에 많은 문화유산이 축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아내도 한자를 좋아해서, 둘이서 전에 같이 老子를 원문으로 공부한 적도 있다.
실제적이 관점에서, 이 논쟁에 終止符(종지부)를 찍은 것은 제 3자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그 세번째 인물(?)은 바로 컴퓨터이다. 한글 전용론자들의 慧眼(혜안)처럼, 한자는 문서전산화에는 너무도 부적합한 표기방법인 것이다. 컴퓨터의 사용의 확대는 매우 자연스럽게도 한자를 일상생활에서 축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글전용론자들이 승리를 한 것은 아니다. 한글 전용론자들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한 순 우리말을 쓰자는 뜻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이나 공공매체인 신문에서도, (조기 영어교육 탓인지) 너무나 많은 영어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말의 "오염도"에서는 한자 혼용을 할때나 지금이나 별차이 없다고 본다. 영어 발음을 잘못배우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나는 영어를 한글로 쓸 바에는 차라리 영어로 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발음에 가깝게 쓰던지) (독일어도 영어로 부터온 말들이 많은데, 그런 것을 Deutsch + English => Denglish라고 한다. 안드레라는 친구가 다른 친구들과 독일말로 말하는데 코미타 (komitta)라는 말이 들려서, "너 뎅글리쉬 쓰네"했더니 웃으면서 그렇다고 한다. Komitten은 영어의 commit에서 온 것이다.)
일본같이 타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이 다른 나라말을 자기 것으로 바꾸어 쓰는 나라도 있고, 프랑스처럼 거의 광적이라고 할정도로 말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는 나라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섬나라의 언어인 영어도 사전을 찾아보면 그야말로 짬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의 철자가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반면에 프랑스처럼 섬나라 옆에 있는 우리나라는 별로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지만, 언어의 혈통을 보존하려는 가상하나 헛된 노력을 하는 열혈당원이 있다. (일본이나 영국에도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언어는 살아서 변하는 것이다. 영어든 한글이던 나도 인터넷에서 나오는 새로운 표기법(?)을 증오하지만 (인터넷이 한글 철자법이라는 것을 거의 무효화 시켰다고 생각한다), 변화를 거스를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편리와 익숙함을 명분보다도 높이 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문화도 경제력이나 지식과 마찬가지로 우세한 문화가 약한 쪽으로 파급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요소도 있기는 있다. 중국어의 경우는 한자의 어려움때문에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문맹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임어당은 평생의 사업으로 중국어의 romanization을 위해서 노력했었는데 (중국어를 발음에 따라서 영어 alphabet으로 표기하는 것) 교육을 받지 못했던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romanized된 표기법으로 편지를 보냈곤했다. 그의 말로는 그런 표기법이 의사전달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안타까움으로 그는 말하기를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감정적인 이유라고 했다. (중국이 한글을 써야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막내도 중국어 학교에 다니는데, 몇번 다녀온 아내가, 세종대왕의 뛰어난 통찰력에 감사를 표시할 정도록 그들이 만든 일종의 표음체계조차도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중국학교만은 한글학교보다 훨씬 자원자도 많고 또 체계적으로 한다고 한다.)
내가 한자를 쓰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한자의 모양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살면서 점점 잊어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국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한자로 써보라고 하면 그들도 머뭇거릴 때가 있다) 라틴어를 배워서 유럽의 오래된 책이나 건물들 문위에 써있는 말을 이해하는 것이 나의 은퇴후 계획중의 하나이다 :-) 한자도 결국은 배우고 싶은 사람만 배워서 유적지의 현판이나 읽게될 것이다.
http://kr.blog.yahoo.com/painteringarden/338
|
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나는 당신의 主張에 同意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主張 때문에 彈壓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서 싸울 것이다.-이블린 홀(Evelyn Hall) ‘볼테르의 친구들’(1906)中
댓글작성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모욕적이거나 인신공격성, 비방성 댓글에 대하여는 응분의 법적책임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