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의 國籍 | 2009/06/24 00:07
/ 名文鑑賞漢字의 國籍
韓國漢字能力檢定會 本部長 全鍾國
국내의 文字政策이 한글을 우선하여 漢字는 附隨的 文字에 불과한 기능을 담당하고만 있다. 그 세월이 이미 50년이다. 江山이 다섯 번 바뀐 긴 시간이다. 이제 漢字는 國民의 腦裏에서 漢文이나 中文과 겹쳐지면서 外國文字 비슷하게 認識되기도 하는 實情이다. 이러하므로 談笑자리에서 漢字 이야기를 꺼내면 話者에 대한 聽衆의 好感度를 半減시키고, 심지어는 고리타분한 族屬으로 烙印찍히기도 한다. 그런데 여전히 漢字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여전히 韓國人이 漢字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고 漢字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漢字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漢字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題目을 보고 漢字는 東夷族이 만든 文字라는 말을 하려는 가 보다 짐작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그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다. 漢字에는 國籍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무슨 말인가? 國籍이 없다니 漢字가 國語의 文字로서 자리 잡고 있지 못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딱딱한 글이 一抹의 興味라도 끌면서 讀者가 몇 줄이라도 읽도록 誘導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국내에서 敎育政策으로 賤待받는 漢字의 지위와는 다르게 法으로는 漢字는 반드시 가르치게 되어 있다. 規程도 아니고 法이다. 누구나 學校에서 ‘맞춤法’ 속에 頭音法則이라는 것을 들어 보았을 것이고, 日常에서 實用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法이다. 國民 누구나 지켜야 할 法이다. 拒逆하면 안 되는 社會 一般의 合意이다. 그러면 이것은 무슨 法인가? 漢字를 가르치라는 法이다. ‘李’라는 漢字가 語頭에 오면 ‘이’라고 표기하라는 法이다. 한글을 위한 것이 아니다. 漢字 관련 法이다. 이렇게 國語에서 쓰이는 漢字에 대해서 法으로 만들어, 읽고 표기하는 法을 가르치도록 하였으니 실제 교육에서 漢字를 노출하지 아니하고 漢字의 頭音法則 등을 가르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우리말 사용을 위한 漢字 교육의 當爲性 만큼은 法으로 明文化 되어 있다 하여 좋을 것이다. 그리고 混用이든 竝用이든 漢字를 쓰는 것도 禁止하지는 않았으니 漢字는 國語속의 文字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國籍이 없다는 말은 도대체 왜 꺼낸 것인가? 讀者의 逆情이 밀려오기 전에 이제 本論으로 들어가 말하려고 한다. ‘漢字는 國語의 文字만이 아니다. 漢字를 쓰는 나라도 韓國만이 아니다. 漢字는 여러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使用하는 文字이다.’ 이제 讀者는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았으리라. 이제는 그만 읽고 이 글을 던져 버려도 좋으리라. 글쓴이가 하려고 하는 말을 알았는데, 何故로 오래 붙들고 읽고 있을 것인가? 그러나 筆者의 글 쓴 精誠을 갸륵히 여겨 참고 끝까지 읽으며 도대체 뭔 소리를 더 하고 싶어 하는 지 궁금해 하는 분이 혹 있을 것이므로 筆者로서는 그분들에게 미리 感謝드리고 크나큰 光榮으로 여기며 蛇足이라도 보태 본 글을 마무리 지어보려고 한다.
中國人은 簡化字를 쓴다. 日本人은 略字를 쓴다. 常用字만 말하여도 簡化字는 1,000字가 넘고, 日本 略字는 250餘字다. 물론 簡化字나 略字를 바라보는 基準에 따라 이 數字는 다소 加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日本은 拜를 拝로 쓴다. 手가 변이 되면 扌 모양으로 바뀌는 것은 漢字를 좀 배웠다면 三尺童子라도 알만한 것이니 拜와 拝는 같은 것이니 따로 正字와 略字라 할 것도 없을 것이라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고, 여하간 모양이 바뀌고 劃이 줄었으니 略字로 보아야 한다는 분들도 있으리라. 이에 대한 判斷은 讀者들의 몫으로 돌린다. 또 예를 들어보자. 中國은 糸를 纟로 쓴다. 점 세 개를 죽 그어 한 획으로 써 버린 것을 글꼴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丝[絲] 红[紅] 纪[紀] 约[约] 级[級] 등의 簡化字들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漢字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이라면 糸를 纟로 쓴 정도를 못 알아 볼 리 없을 것이다. 굳이 簡化字라 구분하며 따로 익힐 필요도 外國文字 취급하며 度外視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왜 갑자기 簡化字와 日本 略字 이야기를 꺼낸 것인가? 또 궁금해 하는 분이 있다면 筆者의 文網1)에 걸린 것이니 筆者는 洽足해 하며 다시 또 힘차게 글을 이어 나간다.
‘簡化字도 略字도 漢字다.’ 이제 筆者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지 않게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할 터인데, 큰 걱정이다. 그렇다. 다 漢字다. 변하였지만 漢字다. 수천년 사용해 온 漢字는 歷史上 수많은 字形의 變遷을 겪어 왔다. 甲骨文과 지금의 漢字 字形을 비교해 보면 그 變化는 실로 엄청나다. 그리고 現代 中國의 簡化字도 漢字 字形의 變遷史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보기에 따라 많이 바뀌었다. 언제 또 바뀔는지 알 수 없으나 현대사회의 技術力으로 볼 때 획기적인 字形의 변화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 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더 이상 書寫의 便利를 추구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컴퓨터 打字技術이 발달하였으므로 앞으로는 簡化나 繁體 여부를 떠나서 可讀性이 좋은 文字가 살아남으리라 생각해 본다.
韓國, 中國, 日本 등등 모두 다 漢字를 쓰는데, 現在 漢字文化圈이라 일컬어지는 이 지역에서 漢字를 가지고 意思疏通하는 데에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한쪽에서는 正字를 淘汰시켜 교육시키지 않으므로 알아보지 못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簡化나 略字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漢字 낱글자의 뜻의 變移나 혹 常用하는 漢字말의 짜임이 다른 경우는 나중 문제이고, 글자도 서로 몰라보는 지경에 이른 것이 또 50년인 것이다. 三國人 사이의 漢字 筆談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各國의 관계자와 學者들이 만나 大局的 統合案이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으나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漢字文化圈 어느 나라든 단시일에 國民들의 文字 生活에 變化를 强制할 만한 權力의 行使가 不可하고, 또 正字나 簡化字(略字) 모두 나름대로 長短을 지니고 있으므로 둘 중의 어느 하나로의 통합도 不可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은 모두 가르치고 같이 쓰게 하고, 뒷날 자연스럽게 살아남는 字形으로 정리해 가는 것이다. 불편하거나 잘못 만들어진 글자, 競爭力이 없는 글자는 자연스럽게 淘汰되거나 古字化할 것이다. 억지로 만들어 갈 수는 없다. 지금의 與件에서의 最上은 자연스러운 混用이라고 본다.
日本 略字는 거의 대부분이 韓國 略字와 一致하므로 문제될 것이 거의 없다. 簡化字는 많다고는 하나 대부분이 기본 簡化字의 類推이고, 基本 簡化字 중의 相當數는 国(國), 当(當), 碍(礙) 등 전통적으로 써 온, 韓國도 현재 쓰고 있는 略字이다. 따라서 典據는 있으나 현재는 잘 쓰지 않는 것, 새로 만든 것을 합하여 대략 二三百字만 익히면 簡化字(略字) 問題는 해결된다. 中日도 傳統文獻의 讀解나 正字 使用 隣國과의 교류 등을 위하여 正字의 교육과 使用이 必須不可缺하므로 장차 正字를 使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韓國에서의 漢字 敎育이 期待値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인 현실에서 다만 數百字에 그친다 할지라도 外國文字에 準하는 대접을 받는 簡化字를 가르치자는 주장, 國語에서 사용하자는 主張은 時機尙早이거나 無分別한 主張으로 置簿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 말해 두었듯이 漢字는 國語속의 文字의 하나이고, 簡化字도 漢字이므로 배워야 할 當爲性만 인정된다면 거부감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느 나라를 말할 것 없고 漢字를 사용하는 나라들 사이의 往來는 상호간 文字生活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므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겠다. 國語 傳統에 없었던 英文字도 50년 세월에 각종 文章에 완전 露出되어 쓰이는 현실에서 비록 簡化字로 구분한다 할지라도 國語傳統의 脈絡上 그 親緣關係가 英文字보다 더 密接한 관계에 있는 文字를 못 쓸 이유는 없다.
機會가 되어 筆者의 簡化字를 바라보는 立場을 밝히는 글을 써 보았다. 이 글이 筆者가 소속된 學會의 입장을 代辯하지는 않는다. 筆者 개인의 意見이므로 誤解는 없기를 바란다. 다만 統合漢字의 制定이 아닌 簡化字의 受容 문제가, 國語學界에서도 文字 政策의 한 주제로 계속 다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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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 나는 당신의 主張에 同意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主張 때문에 彈壓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서 싸울 것이다.-이블린 홀(Evelyn Hall) ‘볼테르의 친구들’(1906)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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