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네 집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빈민촌에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아마도 한 시간 쯤..? ...
잘 빠진 도로를 벗어나 언덕을 올라가지요. 눈에 익은 삼거리가 나오면 버스에서 내려 건물 사이 좁을 통로에 있는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 갑니다. 좁은 골목을 따라 몇 발짝만 걸으면 따닥따닥 붙어있는 건물 중에서 검은색 철창문을 가진.. 판자촌은 아니지만 달동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열악한.. 아마도 빈민촌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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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네 집에서 ⓒ박근하 서울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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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네집 골목의 풍경 ⓒ박근하 서울포스트 |
삼층에 위치한 이 집에는 4개의 방에 7명의 여자만이 살고 있습니다. 아나네 어머니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두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고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보조사입니다.
아나는 콜롬비아의 대학생인데, 방학이라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만났지요. 콜롬비아에서 카라카스까지 이틀밤의 거리.. 우리는 너무나 친해지고야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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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네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 ⓒ박근하 서울포스트 |
아나와 같은 방을 쓰는 아가씨는 임신중인데, 직업이나 애인은 없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만삭의 몸으로 시장에서 열매를까고, 쓰레기를 모으니.. 뭐 그런 일들로 일당일당 살아갑니다.
그래도 아기옷이랑, 분유통이랑.. 그런 것들을 구해와 모아 뒀더라구요, 방 한구석에는 인형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쓰레기통에 버려진 인형들을 일일이 손으로 빨아 삶아서 다시 꿰맨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게 뭔가 선물 할까 했었지만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가방에 넣어두었던 콜롬비아 지폐들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콜롬비아를 떠나면서 기념품으로 한장씩 남겨두었던것인데.. 지퍼는 열쇠로 잠가뒀었지만, 너무 낡아서 구멍난 가방 한쪽으로 그녀가 빼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랬기를 바랍니다.
다른 방의 아주머니는 그 동네 상점에서 근무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뭐하는 사람인지를 궁금해하며, 가게에서 시리얼과 우유를 사오셨습니다. 아침에 식사 대신 챙겨먹으라고, 자신의 시리얼과 우유를 절반씩 덜어주셨습니다.
이층에는 대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 집 딸도 대학교에 다닙니다. 방송 기자가 꿈이라고 하면서도, 꿈은 꿈일 뿐이라고, 너무나도 먼 곳에 있는것 같다며 꺄르르~ 웃고 맙니다. 이집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 뿐입니다. 할머니도 큰아버지도, 외삼촌도... 손주 먹을 팬 케익을 뺏아 먹는다고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셨던 이집 고모님만 빼고서는 말이죠.
어느날 동네 구경하고 치킨 두마리 사들고 들어갔더니, 식구들은 이미 저녁을 먹었다며 아무도 안먹습니다. 아나가 제 치킨만 챙겨주면서 이집은 각자 먹을것을 각자 구해서 먹으니 두고두고 저 먹으랍니다. 하지만 제가 무조건 같이 먹어야 한다고 빡빡 우기니까 다들 서로의 눈치보며 먹는 시늉들만 합니다. 손님인 제가 먹을 것을 대접하는 것은, 편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나가 아버지 집으로 갈 때까지 약 일주일 동안.. 하는 일이라고는 여자들끼리 패션쇼하며 사진 찍기. 아나의 남자 친구 자랑 듣기. 그리고 서로의 꿈.. 뭐 그런 얘기들을 했지요. 언젠가는 외국을 여행하고 싶다고 하길래.. 한국에 꼭 오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페이스북(서양식 싸이월드)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합니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저녁 7시가 넘은 시간,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로 했습니다. 아나랑 제가 외출 준비를 하니까 아래층 아저씨가 이 시간에는 위험하다며 말리십니다. 아이스크림을 직접 사다 주시며 밤거리는 아저씨에게 심부름을 시키라고 몇번이나 신신 당부 하십니다. 평소에는 저렇게까지 친절하지는 않으시다고.. 아나는 조금 삐졌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골목에서 궁것질로 아침을 때웁니다. 동네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도 아나는 항상 아이들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줍니다. 한명을 사주면 모두가 뭔가를 기대하게 될테니까요. 그것은 이곳 아이들의 교육에도 분명 좋지 않은 일일거라고... 여러번 강조합니다. 나는 아나가 신중한 성격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그리고 콜롬비아나 베네수엘라를 깔보는 몇몇 외국인들때문에 그녀가 자존심을 상한 적이 있었을거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이곳은 밤거리가 위험하다고 다들 저에게 잔소리합니다. 만약 이곳에서 일년 쯤 살게 된다면 한번 쯤은 소매치기나 퍽치기를 당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 1%의 확률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지만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수 없기에 베네수엘라의 밤거리가 위험하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베네수엘라는 전체 인구의 90%가 가난하다고 합니다. 50%가 빈민이라고 하고요.
이 아이들 중엔 분명 매춘을 하고, 강도짓을 하는 아이가 생겨날 수 있겠지요. 아뇨 분명 생겨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믿는것처럼 모두가 강도짓을 하고 마약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백만명이 넘는 이곳에서 모두가 매춘이나 강도짓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매춘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상도덕이 있고, 솔직함이 존재합니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과 매춘은 별개라고 말했던 콜롬비아의 아가씨를 기억합니다. 외국인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찬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도 어린 그녀는 자신의 직업에 그렇게 당당했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곳의 아이들 대부분은 노동자가 될 것입니다. 운이 나쁘면 길에서 쓰레기를 줍고, 운이 좋으면 상점에서 일하게 되겠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세계 어느곳보다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을 해야만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부모가 그랬듯 아이들을 키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어 할 것입니다.
<차베스는 국민들에게 복지를 약속하고 석유, 철광, 무역 등 모든 것을 국유화했지만 언론만큼은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즉,언론의 실제 주인은 여전히 부자들이었다. 사람들은 차베스에게 열광했으나 이권을 챙기지 못한 부자들은 중간에서 실제로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차베스의 정책이 하나, 둘, 실패로 돌아가자, 부자들은 차베스를 독재자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속사정을 모르는 국민들은 차베스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마음이 돌아섰기에 차베스를 좋아하는 기자들은 많을 지언정 누구도 더 이상 차베스를 지지하는 글을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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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는 빈민촌에 무상으로 지원되는 재활용 옷들이 만들어진다. ⓒ박근하 서울포스트 |
버스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신문기자 녀석의 설명이었습니다.
차베스의 정책으로 이곳 아이들은 질 낮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리에는 차베스의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지만, 욕설과 낙서로 모두 훼손되어 있습니다. 차베스가 독재자냐 아니냐, 좋은놈이냐 나쁜놈이냐 로 그 누구도 답을 낼 수는 없을 겁니다. 어쨌든 그는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두가 독재자라고 믿는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사랑하고 있는것 만큼은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위험하다고만 욕하는 이곳에서도 아이들이 자라고, 꿈이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처럼 말입니다.
(박근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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